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이론은 꿈에 대한 연구와 히스테리와 분열성 개인들에 대한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분열성 병리의 기저에 유아기 때 겪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외상적 경험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유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소망에 토대를 두고 있는 상호 작용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 이러한 유아의 갈망이 대상에 의해 반응 받지 못할 때, 유아는 자신의 사랑이 나쁘거나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박탈 경험은 유아의 구강기적 욕구를 강하게 할뿐만 아니라 그 욕구에 공격적인 속성을 부여한다. 어머니의 사랑 결핍으로 인해 좌절을 경험한 분열성 개인은 자신의 사랑을 요구적이고 공격적인 어떠한 것으로 경험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머니와의 활발한 관계에서 철수하여 “내적 세계”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그 결과 자아(ego)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 부분은 외부 대상을 다루고 다른 부분은 내적 대상을 다룬다.

페어베언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에게 많은 영향을 받 았다. 클라인은 유아가 전체 인격으로서 내재화된 어머니를 파괴적 충동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심리적 구조물을 확립하는 과정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였다. 그녀는 유아가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이 단계를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ition)라고 명명하였다. 페어베언은 클라인의 견해에다 좋은 어머니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서 자기 안에 구조화된 안전감을 획득하는 과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초기 단계의 불안은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 아니라 출현하는 자기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즉 죽음 또는 광증과 같은 의미를 갖는 자기의 파편화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페어베언은 이 일차적 위기 단계를 클라인의 용어를 차용하여 분열적 자리(schizoid position)라고 불렀다. 페어베언은 우울적 자리와 분열적 자리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근원적인 재난은 각 개인의 발달 과정에서 생긴 실패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는 발달의 문제를 이러한 초기 두 자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클라인의 생각을 따랐지만, 그녀의 죽음 본능에 대한 개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환경적 요인들, 즉 어머니의 보살핌의 질이 초기 발달에서 갖는 중요성을 더 강조하였다.

페어베언은 본능 에너지와 성감대를 통한 긴장의 방출이라는 가설 위에 세워진 리비도 이론은 어머니 그리고 이후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같은 순수 심리학적 요인들에 기초를 둔 새로운 이론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요컨대, 페어베언은 정신분석가는 기본적으로 본능의 변화나 변천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이것 없이는 발달도 없다고 주장했다.

페어베언은 임상적 관찰들을 토대로 성격의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of the personality)을 확립했다. 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재해석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점에서 프로이트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난다. 첫째 페어베언은 자아를 원본능에 뿌리를 두고 현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구조라고 생각하였다. 자아는 원본능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역동적 구조(dynamic structure)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에너지는 물질이나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현대 물리학의 견해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페어베언은 리비도를 자아의 기능으로 개념화하고, 공격성을 좌절이나 박탈에 대한 반응으로 개념화함으로써 독립적인 구조로서의 원본능 개념을 폐기했다.

페어베언과 프로이트의 생각에서 벗어난 두 번째 요소는 에너지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리비도(libido)라는 프로이트의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했지만, 그것을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페어베언은 리비도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또한 리비도의 목적은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족스런 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신생아는 타인과 관련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련된 기본적인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후 처음부터 현실을 지향한다. 이러한 관점은 신생아를 특정한 환경 안에 존재하는 기능적 총합으로서의 유기체로 보는 현대 생물학적 개념과 일치한다. 페어베언은 유아의 욕구가 성감대 안에 뿌리를 둔 여러 가지 본능이나 세력에 의해 활성화된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오히려 그는 유아의 중심적인 욕구는 어머니와 만족스런 관계를 맺는 것이며, 성감대는 만족스런 관계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것들은 대상과 관련된 리비도적 욕구의 표현을 위한 “기법” 또는 “통로”이지 리비도의 일차적인 목표이거나 원천이 아니다.

페어베언은 차츰 마음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발달시켰다. 그는 환상 관계로 이루어진 내면 세계라는 클라인의 개념을 토대로 역동적 구조로서의 자기라는 관점을 발달시켰고, 이러한 관점에서 정상적 발달과 정신병리적 상태들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는 원본능/자아/초자아에 대한 구조적 모델을 기본적 심리내적 구조(basic endopsychic structure)라는 새로운 모델로 대체하였다. 이것은 심적 구조 모두를 포함하는 단일한 구조인데, 그는 이것을 자아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불렀다. 자아는 그 자체로서 에너지의 원천이며, 시작부터 현실 지향적이고, 일차적 대상, 즉 젖가슴 또는 어머니와 관계를 추구한다. 마음의 구조는 원초적 자아로부터 내재화, 분열 그리고 그에 따른 모성적 대상 측면이 억압되는 과정을 거쳐 역동적인 구조로 발달해간다.

어머니와 유아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겪게되는, 특히 어머니와의 분리로 인한 불만과 좌절은 유아로 하여금 만족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불만족스럽기도 한 대상을 내재화하게 만든다. 이 때 유아의 반응은 양가적이 되고 불안하며 방어적이 된다. 또한 공격성은 억압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결과적으로 분열이 초래된다. 페어베언은 분열을 유아가 초기에 겪는 좌절과 과도한 흥분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보편적인 정신 현상으로 가정했다. 분열은 정상적인(때로는 병리적인) 방어 기제로서 자아(자기)를 나누고 조직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즉 그것은 원치 않는 대상의 측면들을 쪼개어내고 억압함으로써 내면 세계를 구성한다. 이때 내적 대상의 일부는 전체 인간을 표상하고, 다른 것들은 젖가슴이나 페니스 같은 신체 부분들을 표상한다. 이러한 전체 대상 또는 부분 대상은 억압될 수도 있고 외부 대상에게 투사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원래 대상(original object)이라 불리는 극히 초보적인 성질을 지닌 아직 나뉘어지지 않은 대상-표상은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이 나쁜 측면은 다시금 두 개의 측면으로 나뉘어진다: 거절하는 대상은 좌절시키는 인색하고 박해하는 요소로 구성되는 반면, 흥분시키는 대상은 유혹하고 매혹하면서도 만족을 주지 않는 요소로 구성된다. 나뉘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중심적인 대상-표상의 측면은 이상적 대상(ideal object)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원래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젖가슴과의 관계가 내재화된 것이다. 최초의 대상은 유아에게서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고 증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나중에 유아에 의해 사랑받는 수용된 대상(accepted object; ideal object의 초기 용어)과 그렇지 못한 거부된 대상(rejected object)으로 나뉘어진다. 거부된 대상은 다시금 두 개의 부차적 대상, 즉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하는 대상으로 나뉘어지며 중심 자아에 의해 억압된다. 페어베언은 그의 초기 글에서 사랑받는 수용된(이상적) 대상을 “초자아의 핵”으로 간주했다.

페어베언은 자아와 대상이 리비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상의 분열은 그것과 연합된 자아의 일부가 분열되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내면 세계는 마침내 여러 개의 내적 대상들로 구성된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나뉘어지지 않은 원래 자아로부터 삼중 구조를 지닌 자아가 생겨난다.

1. 중심 자아(central ego)는 “나뉘어지지 않은 자아의 잔재”로서, 억압을 수행하는 기능을 갖는다. 페어베언은 이것을 나(I)라고 명명하였다. 페어베언은 이 나가 의식적 성질을 갖는다고 강조했지만, 이 나는 의식, 전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다고 생각하였다. 린슬리(Rinsley, 1982)는 이 중심 자아가 프로이트의 현실 자아(reality ego)와 유사하다고 보았으며, 그것이 전체 대상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2. 리비도적 자아(libidinal ego)는 원래의 자아로부터 분열되어 억압된 부분이다. 여기서 원래의 자아는 즐거움을 주는 대상과 리비도적 관계를 맺는다. 페어베언은 리비도적 자아를 원본능과 유사한 것으로 보았고, 린슬리는 그것을 프로이트의 순수 쾌락 자아(purified pleasure ego)에 견주었다.

3. 반리비도적 자아(antilibidinal ego; 초기에는 내면의 방해꾼이라고 불렀던)는 원래의 자아로부터 분열되어 억압된 부분으로서 거부하는 대상과 리비도적 관계를 맺는다. 공격하는 부모와 동일시되어 있는 반리비도적 자아는 원초적인 박해 구조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프로이트가 자아 이상과 초자아로 개념화한 억제를 실행하는 측면들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반리비도적 자아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초자아처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페어베언(1963)은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를 (a) 이상적 대상 또는 자아 이상, (b) 반리비도적 자아, (c) 거부된(또는 반리비도적) 대상을 포함하는 복잡한 구조라고 설명하였다(p. 224). 그가 도덕적 방어(moral defense)라고 부른 것은 분열되고 나쁜 대상(좌절을 주고 흥분시키는)의 내재화를 재강화함으로써 나쁜 대상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는 초자아의 노력을 지칭한다.

초기 분열은 부모의 태도에 의해 심화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 페어베언은 이 구조를 발달 과정의 보편적인 형태라고 보고, 이 것을 기본적인 심리내적 상황(basic endopsychic situation)이라고 하였다. 이 심리적 상황은 본질적으로 분열적 자리를 일컫는다. 이 상황은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에 대한 중심 자아의 “공격적인 태도”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페어베언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달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더 초기 구조의 파생물이다. 그는 오이디푸스 대상과 성기적 관계를 맺으려는 바램, 그에 따른 공포와 금지들을 오이디푸스적 부모와의 전체적이고 통합된 관계로부터 부분 대상관계로 퇴행하는데 따른 결과로 보았다.

페어베언은 억압을 직접적(direct) 또는 간접적(indirect) 억압으 로 정의한다. 직접적 억압은 중심 자아가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에 대해 갖는 “거부적 태도” 그리고 이차적으로 중심 자아가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에 대해 갖는 “거부적 태도”로 구성된다. 간접적 억압은 반리비도적 자아가 “리비도적 자아와 그와 관련된 흥분시키는 대상에 대해 갖는 적대적 태도”로 구성된다. 부차적 대상들(거절하는 대상과 흥분시키는 대상)과 부차적 자아들(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은 억압되어 무의식적인 내용이 된다. 그러나 페어베언은 어떻게 억압된(즉 분열된) 정신 내용이 무의식의 내용으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억압과 분열을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으로 보았다.

페어베언은 아브라함(Abraham)의 리비도 발달 도식과 리비도 발달 단계들 구강, 항문, 성기을 어머니에 대한 의존의 변천에 기초를 둔 대상관계 발달 모델로 대체하였다. 그는 의존의 세 단계를 가정했다;

1단계는 유아기 의존(infantile dependence) 단계로서, 유아의 입이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대상인 어머니의 젖가슴과 관계 맺는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역할을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특징은 입에 대한 리비도의 투자라기보다는 대상의 함입 또는 취하기(taking in)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젖가슴의 내재화가 이루어진다. 이 단계는 일차적 동일시(primary identification)의 단계이기도 하다. 페어베언은 일차적 동일시를 자기로부터 아직 완전히 구분되지 않은 대상과 융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페어베언의 모델 안에서는 유아기 의존, 일차적 동일시 그리고 자기애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단계는 어머니의 젖가슴(부분 대상인)과 관계를 맺는 초기 구강기(전양가적) 단계와 젖가슴을 가진 어머니(부분 대상으로서 다루어지는 전체 대상인)와 관계를 맺는 후기 구강기(양가적) 단계로 나뉜다.

2단계는 유사 독립(quasi independence) 단계로서, 특정하고 자연적인 생물학적 대상을 갖지 않는 장기간에 걸친 중간 단계 또는 전이 단계에 해당한다. 이때 유아는 점차 자신과 외부 대상을 구분하고, 외부 대상과 좀더 확고한 관계를 맺으며, 대상에 대한 내적 표상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세계를 조직화한다. 구별, 수용 그리고 거절이 이 단계의 특징이다. 대상은 전체 대상으로 지각되지만 그 전체 대상은 배설물과 같은 신체적 내용물로 취급되고, 대상의 “나쁜” 부분들은 신체 바깥으로 배출된다. 이런 이유로 이 단계에서 유아의 태도는 “배설”의 색채를 띠는 것이지 항문이나 배설 그 자체에 리비도가 부여되기 때문이 아니다.

페어베언은 분열성 환자들이 자기의 상실이라는 기본적 재난에 대한 방어적 수단으로 정신 신경증적 유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그는 정신 신경증을 리비도의 발달 단계에 특정한 기원을 갖고 있는 병리적 실체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대신에 그는 그것을 일반적인 가족 관계 유형을 통해 이루어지는 내재화와 외재화의 기법들로 보았다. 아이들은 이러한 기법들을 통해 수용적 대상과 거부적 대상을 조절하거나 “다룰 수 있게”되고, 구분된 대상에 기초한 대상관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일차적 동일시에 기초한 1단계(구강 단계)의 대상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이 생애 후기까지 지속될 때, 그것들은 분열성 상태와 우울증 상태로의 퇴행을 방어하는 병리적 기제들이 되어 공포증, 히스테리, 강박증 및 편집증을 일으키게 된다.

3단계는 성숙한 의존(mature dependence) 단계로서, 자기와 대상을 충분히 구분하고 전체 대상들과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자연적인 생물학적 대상은 근친상간적이지 않은 파트너의 성기이다. 이 단계는 성기성(genitality)에 관한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인 측면은 전체 관계의 일부분일 뿐이며, 그보다는 평등한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하고 협력하는 태도가 이 단계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룬다.

페어베언은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을 도입하였다. 일부 정신분 석학자들은 그가 제시한 도식이 프로이트의 도식보다 더 적절하다고 간주한다. 페어베언 이론의 발달과정에서 클라인의 발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비교적 고립된 상태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정신 분석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심각한 장애들을 위한 치료의 장을 열었고, 이러한 그의 공헌은 컨버그(Kernberg), 린슬리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점점 더 인정을 받게 되었다. 건트립(Guntrip, 1961)은 페어베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임상적 자료들을 제시하고 페어베언의 매우 압축된 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줌으로써, 페어베언의 이론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